
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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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담기 (2025.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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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2
109조회작성자 :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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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담기
- 如江 김영철 (2025.4.8-19)
알무데나 성당
- 마드리드
하늘로 솟은
회색 대리석 기둥들
그 끝에 빛이 있다
길고 낮은 파이프 오르간 숨결
행인들도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고개 숙인다
그 침묵 속에서
제단 뒤
한 청년, 사형수 형틀에 못 박힌 채
마지막 입을 연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2025. 4.10
밤 향기
- 코르도바에서
발끝으로
이국의 골목을 헤매다
무거운 몸
침상 위에 누이다
창문으로
밀려오는 꽃향기에
포로처럼 불려 나간다
사이프러스 그림자
자그마한 돌 분수
길 따라가는 노란 전등들
홀로 걷는 산책길
오렌지 꽃
서럽도록 향기롭다
2025.4.11
훌라밍고 Flamenco
– 세비아에서
Ⅰ.
지하철에서, 광장 구석에서
그들의 손은 빛보다 빠르다
낡은 코트 주머니 속에
오늘의 빵이 들어 있다
삶은 낮게 흘러도
혼은 꺾이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노래하고, 춤추고
2.
따딱따 딱따—
요란한 구두 굽소리
휘날리는 치맛자락은
쫓기던 하루를 가르며 타오른다
거칠게 튕기는 기타 소리
스페인 햇볕처럼 따갑고
소리꾼의 곡조는 저녁 강물처럼 구슬프다
길들지 않는 방랑자의 몸짓
무릎 꿇지 않는 혼의 숨결
황혼 속에 타오른다
2025.4.13.
협곡을 건너
– 누에보 다리
너와 나
깊은 협곡으로 갈라져
서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 무너진 시간 위로
돌 하나,
또 하나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아
돌은 믿음이 되었다
날카롭게 갈라진 협곡이
하나가 되자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다리가 되었다.
2025년 4.13
알함브라 (Alhambra)궁전
– 그라나다에서
사각의 성곽이 저녁 햇결에
묵직이 누워있다
꽃무늬 새겨진 타일 위로
물결처럼 흐르는 코란의 경구들
적군의 함성 —
성문은 결국 열렸다
아이샤 태후는 검은 베일을 젖히고
쏘아 보았다
"남자로 지키지 못한 성(城)—
여자처럼 울지 마라"
침묵의 대열은
어둠 속으로 떠나고
붉은 성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었다
2025.4.14
돌로 기도한 사람, 가우디
-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그는 설계하지 않았다
무릎 꿇고
빛을 기다렸을 뿐
벽돌 하나하나에
복음 새겼고
기둥마다
십자가의 고통 심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인간의 집이 아니라
하늘의 집을 짓고자
하루를, 생을, 기도를
쌓아 올렸다
하늘 향해 두 손 모은 이
성전 지하에서 잠들다
2025. 4. 14
해체, 실험, 정의의 화가, 피카소
-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Ⅰ.
진실은 단면이 아니다
거울조차
자기 얼굴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얼굴은 둘로 나뉘고
눈은 어깨에,
코는 옆으로 걸어 나왔다
2.
오늘은 파랑,
내일은 장미,
다음은 흙빛의 황소
그는 같은 선을
두 번 그리지 않았다
어제를 부수고
오늘을 부수고
내일을 부수고
3
게르니카—
그림이 아니라
비명이었다
고개 꺾인 아이와 통곡하는 엄마
우는 말의 입
쓰러진 병사의 부러진 검,
꽃 하나
희망없이 피고
그 순간,
모든 시곗바늘이
검은 선이 되었다.
2025.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