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렘브란트 나폴레옹 라파엘로의 공통점은?
성이 아니라 이름만으로 역사에 남았다는 점이다.
빛의 화가 라파엘로를 깊이 연구하며 빛의 마술사로 태어난 렘브란트는 라파엘로처럼 이름만으로 불리고 싶어 이십대부터 렘브란트로 서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가로서의 자각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둠과 빛의 명료한 대비와 극적인 효과로 유명한 렘브란트의 <야경>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다.
복원중인 작품관 옆에 모작이 걸려 있다. 내 눈에야 차이도 없지만.


이 대표작이 잘 나가던 화가로서의 내리막이 되었다니 아이러니하다. 화가로서의 정체성과 고객 만족도가 충돌한 지점이랄까.
투어중엔 렘브란트가 무리해서 샀다 파산해 넘어간 그의 저택 투어도 감초처럼 끼어 있다.
사치와 낭비벽, 추잡스런 사생활로 유명했던 그는 막판엔 재산을 경매로 처분해 사실혼녀 헨드리케와 아들에게 넘기며 파산을 선언했고 빚은 전부 떼먹었다 한다. 빚투의 대명사다. 천재화가 렘브란트는 노년의 궁핍속에서 아름답고 충직했던 헨드리케와 아들마저 먼저 떠나보내고 만다.
그의 주름진 말년 자화상에선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화가로서의 긍지와 확신이 선연하다.

렘브란트의 암스테르담엔 그의 자화상이 많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라고 해도… 그래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페르메이르의 델프트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선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 그림을 볼 수 있다. 골목길 등 유명 작품들은 전 날 보았다. 델프트를 방문해 유명한 델프트 블루의 델프트 자기와 델프트 성당과 광장도 구경하며 그곳에서 살았던 페르메이르를 생각해본다. 400년이 지났음에도 남아있는 그 오랜 풍경이 부러웠다.

이번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3점이나 본 것, 피터 브뤼헐의 작품 여러점을 본 것이다.
보스 작품은 전세계에 25점(28점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론 25점이란다) 밖에 남아 있지 않다니 이번 여행이 더욱 소중했다.
한 점은 브뤼셀에 있는 벨기에 왕립 미술관, 나머지 두 점은 브뤼헤에 있는 그뢰닝 미술관에 있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 보스는 15세기 플랑드르파 화가 중 하나로 기괴한 창조물들과 알레고리를 사용한 그림들을 그린 미스테리에 싸인 화가다. 지옥도 같은 그의 그림들을 보면 불교 탱화 특히 티벳 탱화들이 연상된다.
플랑드르파의 브뤼헤
피터 브뤼헐은 설명이 필요 없는 화가다. 르네상스 시대와 플랑드르 회화에서 얀 반 에이크,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터 폴 루벤스와 함께 4대 거장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들 4명의 걸작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여행이 바로 이곳이다.
아버지 얀 브뤼헐의 <바벨탑>도 이 투어에서 볼 수 있었다.

피터 브뤼헐의 작품들까지 보아서 너무 행복한 여행이었다.


루벤스의 안트베르펜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에서 실컷 볼 수 있다. 안트베르펜 전체가 그의 나와바리다. 그의 화실 공장에서 나온 작품들 말고 거장 루벤스의 진또배기 제단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대성당 바깥엔 죽기 전 루벤스의 제단화를 보고 싶어했던 네로의 파트라슈가 눈속(?)에 묻혀 있는 조각이 있어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는 아마 사라져 가는 직종 중 하나일 것 같다.
동시대인 중 가장 재능 있고 명민했던 천재들이 사라져 가는 것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붙잡아내 우리 눈 앞에 구현하려 애썼던 <그림>이라는 이 오래된 이차원 장르가 이제는 예전처럼 소중하게 느껴질까 싶기 때문이다.
네로가 그림 하나 보겠다고 목숨을 걸었던 그 절박함이 영상의 홍수속에 사는 현대인인 나부터도 가슴에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달고 있는 이 그림들이 자꾸 보고 싶은 건 오래전에 죽은 그들 화가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기 때문일 거 같다.
그림을 본다는 걸 빼도 미식 투어인가 싶을 정도로 눈썰미 좋고 섬세한 취향을 가진 여행 오가나이저이자 인솔자인 박영진 대표께 큰 박수를 보낸다.